2009년 3월 30일 월요일

당신이 만난 초원이

좋은 삼겹살집을 알려주마는 친구 놈의 전화에 김과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거기서 우리는 초원이를 만났다. 영화 말아톤의 그 초원이. 초원이의 실제 모델이나 초원이 역의 조승우를 만났다는 것은 아니다. 초원이처럼 자폐증이나 그 비슷한 무엇인가를 앓는 사람을 보았다는 의미다.

첫인상은 부산스럽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거듭하더니, 금세 관심사를 옮겨 옆 사람의 신발에 쓰여진 영어 단어를 궁금해 했다. 그것도 잠시뿐, 또 후다닥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어디까지 가느냐 묻고는 답도 듣기 전에 자기는 어디까지 간다고 말했다. 영화 속 초원이가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승객들은 대체로 곤혹스러워했다. 영화의 영향인지 대놓고 싫은 티를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으나 어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다는 감정이 그들의 표정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짓궂은 김 녀석은 불쾌한 농으로 그 감정을 표현했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나는 웃는 대신 김을 향해 인상을 써 보였다.

"그러지 마."

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자신이 심했음을 안 것이다. 다음 순간, 김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날 붙잡았다.

"뭐 하게?"

나는 내 손목을 움켜쥔 채 물어오는 김에게 시선을 맞추었다가 저만치에서 여전히 부산스러움을 보이고 있는 초원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김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뭘 하려 했더라?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디까지 가는 길인지 묻기라도 해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곤혹스러워하는 시선들 앞에 그를 그대로 두기가 싫었다. 김의 손을 풀어낸 나는 버스 승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초원이에게 다가갔다.

"어디서 내려요?"

혹시 그가 겁이라도 낼까봐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는 시선을 피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한 차례 더 웃는 낯으로 시도해 보았다.

"나는 OO정류장에서 내려요."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친절하게 말이라도 건네자는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것이 쑥스러웠던 나는 초원이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돌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다가 그것을 보았다. 그것, 사람들의 시선 말이다.

사람들은 곤혹스러워하는 눈길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다는 감정이 그들의 표정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김은? 김의 표정은? 또 짓궂은 말을 던질까 걱정이 되어 김의 자리로 눈을 돌리던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김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명을 지를 뻔했다.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조금 전까지 그곳에 있었던 초원이마저 사라졌다. 당황한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디서 내려요?"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나는 OO정류장에서 내려요."



그날 그를 보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린 우리 서로에게 초원이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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